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
피아노 삼중주 no. 1 d단조, op. 49 제2악장

글쓴이:박수원

우리는 어떤 인물의 사람 됨됨이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그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난 집안을 살펴보곤 한다. 결혼이나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 정치판에 출사표를 던지려는 이들 할 것 없이 집안 내력을 따지고 드는 이 ‘검증’의 잣대 앞에서 발가벗겨지게 되면, 아름답고 추한 일들이 모두 드러나게 된다. 물론 틀릴 가능성도 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이들과 교류가 있었는지 들여다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해주는 지혜로운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부터 이백 여 년 전, 독일 함부르크에서 한 음악가가 태어났다. 장차 엄청난 음악을 지어내어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길 이 아이에게 펠릭스(Felix), 우리 말로 “행복”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이 이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당대 많은 음악가들의 삶이 가난하고 불우했던 것과는 달리 멘델스존의 삶은 매우 풍요롭고 안정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우선 할아버지는 유태인 혈통으로, 임마누엘 칸트에 견줄만한 철학가였다. ‘꼽추’라고 일컫기도 하는 척추 장애를 지니고 있어서 왜소해 보이긴 했지만 자유로운 사상과 해박한 지식으로 당시에는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미 멘델스존이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나버린 탓에 손자에게 직접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받을 수는 없었으나, 폐쇄적인 유태인 공동체의 벽을 넘어 독일 사회에 자유롭게 동화되기를 주장했던 그 식견은 장차 손자인 멘델스존 대에 이르러 자손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은행가로 성공한 멘델스존의 아버지는 두말할 나위 없이 경제적인 면에서 가정을 잘 꾸려 아들 음악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되었고, 문학적 소양이 풍부했던 어머니로부터는 언어에 대한 감각과 감수성을 물려받았다. 한 켠에 물러나 있던 할머니도 보통 분이 아니셨던 것 같은데, 이를 테면 음악을 좋아하는 손자의 열 다섯 살 되던 생일에 바흐의 마태 수난곡 악보를 선물할 정도였으니 온 가족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최고의 음악가로 커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멘델스존은 열 두 살 때에 최고의 문호 괴테를 직접 만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갸름하고 조그마한 초등학교 오학년 짜리가 시대를 뒤흔든 일흔 두 살의 대 작가를 만나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고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진다는 것, 오늘 날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보아도 평범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의 음악으로 관심을 돌려보자. “모차르트에 비견할 만큼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 이미 예술가로 태어난 이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잘 먹고 잘 사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삶의 고통은 피해갈수 없는 법, 그의 음악 속에는 안개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바라보는 영민한 지성인의 슬픔이 담겨 있다. 남보다 많이 알고, 많이 느끼기에 감내해야 하는 아픔이랄까? 그렇지만 그는 고뇌로 뒤덮힌 삶을 바라보는 동시에 저 멀리 밝게 빛나는 하늘이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희망과 기쁨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행복한” 멘델스존이 서른 살에 남긴 피아노 삼중주의 두 번째 악장, 여름을 기다리는 이 즈음에 들으면서 작은 위로를 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