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닌 드보르작 Antonín Dvořák(1841-1904)
오페라 <루살카>:주님께서 당신 영혼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쓴이:박수원

제 한 몸 뒤척이기 힘들어하던 갓난아기도 쑥쑥 자라나 어느 틈엔가 훤칠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게 되고, 황홀한 이십대의 젊음도 언젠가는 병들어 사그라지게 된다. 늙음을 한탄하고 세월의 덧없음을 슬퍼하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맛보고 겪어야 하는 삶의 본래 모습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더 큰 행복을 누리고 보다 인간다워 질 수 있을까? 역사를 통틀어 몇몇 지혜로운 사람들은,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남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뉘우침과 사랑이 우리 삶 안에서 이루어질 때, 가장 큰 행복과 아름다움을 빚어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오늘 날 동유럽 슬라브족들에게는 사람의 몸과 사랑을 갈망했던 어느 요정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 이름 루살카! 좋게 말해 요정이지, 차가운 물속에서 지내는 물귀신에 불과한 루살카는 어느 날 사냥 나온 잘 생긴 왕자님을 보고 난 후 그만 사랑에 빠지게 된다. 휘영청 떠오른 밝은 달빛 아래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호숫가에서 아버지에게 말한다. “슬퍼 죽을 것 같아요. 깊은 물속을 떠나 인간이 되고 싶어요. 밝은 햇살 아래 살고 싶어요. 제게 말씀하셨지요. 인간이 어떻게 영혼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들이 죽어서 이 땅에서 사라질 때 그 영혼이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는지를….” 아버지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물귀신이 물을 떠나 인간의 남자와 사랑을 꿈꾸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더구나 사람의 영혼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인데 그게 뭐 그리 좋다고…. 그러나 세상 어느 아버지가 딸의 말대꾸를 이길 수 있을까? 사람의 영혼에는 사랑도 가득하지 않느냐고 애원하는 루살카에게 마지못해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결국 루살카는 마법의 약을 마시고 목소리를 잃는 대신에 그토록 원하던 아름다운 사람의 몸과 영혼을 얻게 되지만 그 역시 험난한 고난의 연속이다. 새로이 걸음마도 배워야 하고,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추위와 배고픔도 체험하게 된다. 멋진 왕자님과의 사랑도 잘되는가 싶더니, 갖은 오해와 더불어 주변에서 질투의 눈총과 이간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말을 못하는 탓에 달리 해명할 방법도 없고 해서 다시 예전의 물귀신으로 되돌아오려 하니 이제는 자기를 버린 그 남자를 죽여 그 피를 마셔야만 한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어, 사람도 물귀신도 아닌, 모두에게 버림받아 절망에 빠진 채로 숲속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어느 날 숲속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왕자와 루살카, 이 둘은 서로 다른 생각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철없는 남자는 예전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죽어서라도 루살카의 곁에 머물고 싶어 하고, 루살카는 자기에게 오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리면서도 사랑하는 남자를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체코 출신의 작곡가 안톤 드보르작은 1901년, 이 전설을 소재로 해서 오페라 <루살카>를 내어놓았다.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더 고귀한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루고 있는 이 오페라는 결국 루살카가 왕자를 죽이고 다시 물귀신의 세계로 되돌아가면서 비극적인 마무리를 하게 된다. 참으로 묘한 것은 오페라를 감상하는 청중의 입장에서 볼 때에 이 두 주인공의 영혼이 마침내 구원받으리라는 확신을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죽어 쓰러진 왕자 얼굴에 입을 맞추고 난 후,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루살카가 남긴 마지막 노래에서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는지’에 대한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사랑과 변덕스럽고도 인간적인 열정을 봐서라도, 그리고 나에게 이런 운명이 주어졌다는 점을 봐서라도, 주님께서 당신의 영혼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