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슈베르트(Franz Liszt, 1797-1828)
가곡 <봄에 대한 믿음> D. 686 Op. 20-2

글쓴이 박수원

태초에 창조주가 내뱉은 생명의 숨결로 삶이 비롯되었듯이, 우리는 호흡과 더불어 말을 쏟아냄으로써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 결국 생명은 호흡으로 빚어졌고, 호흡은 말을 낳았으며, 이 말에 진심 어린 마음이 어리어 시(詩)가 되었다. 높고 낮은 말의 흐름이 선율이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기에 시는 너무나 당연히 노래가 될 수 있었다. 글이 없던 시절에는 입에서 입으로 이 노래 가락이 전해졌지만, 차츰 사람들은 글로 적어 시를 다듬고 보다 정교한 선율과 반주를 붙이는, 말하자면 가곡(歌曲)을 지어내는, ‘작곡’이라는 세련된 일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역사의 흐름 안에서 흔적을 남겼던 작곡가들 가운데 최고의 가곡 명인을 고르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오스트리아 태생의 프란츠 슈베르트를 꼽을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로부터 기본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고, 성당 성가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음악적 소양을 쌓다가 그 유명한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베토벤이 죽기 전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당대 유망주였던 슈베르트. 두툼한 턱살이 잡힌 동글동글한 얼굴에 자그마한 철 테 안경 너머로 맑고 수줍은 눈빛을 지닌 왜소한 체구는 육 백 여 곡에 달하는 가곡을 남긴 ‘가곡의 왕’의 생김새로 볼품 없다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의 음악이 뿜어내는 고귀한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괴테, 뮐러와 같은 당대 최고의 시인들의 작품에서 가사를 고르는 안목뿐만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에 스며든 정서를 잡아내는 섬세함, 그리고 이를 음악과 연결해주는 솜씨에서 대가다운 풍모를 아낌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1820년 유럽 전역이 나폴레옹 전쟁으로 몸살을 앓을 때, 많은 이들이 고통과 두려움을 느꼈었고, 요한 루드비히 우란트라는 독일 시인은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봄에 대한 믿음>이라는 짧은 시를 남겼다. 이를테면 정치적인 상황을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빗대어 드러낸 셈이다.

『부드러운 바람이 잠에서 깨어나
밤낮으로 그윽하게 속삭이며
여기 저기를 어루만진다.
상쾌한 내음이여, 새로운 소리여!
고통 받는 이들, 이제 두려워 마시오!
모든 것이 온전히 바뀔것이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설령 모른다 하더라도,
세상은 나날이 아름다워지고,
그침 없이 화사하게 피어나리라.
저 멀리, 깊은 골짜기에도 꽃들은 가득할진대
고통 받는 이들, 이제 두려워 마시오!
모든 것이 온전히 바뀔것이요.』

요한 루드비히 우란트(Johann Ludwig Uhland)의 시 <봄에 대한 믿음>에서

어려운 이들에게 봄은 희망이며, 봄소식은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 가벼운 바람은 따스한 온기와 더불어 온 천지에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기쁘게 좋은 일을 기다리라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흐름을 보여주는 우란트의 시가 슈베르트의 손을 거치면서 좀 더 특별한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음유시인의 악기인 기타, 혹은 하프를 연상시키는 맑은 피아노 반주는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이미 반주 안에서 전체 작품의 정서는 청중에게 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전하는 일설에 의하면, 당시 슈베르트의 절친한 벗이 감옥에 갇혀있던 터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고픈 작곡자의 심중이 더욱 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고도 한다.

이미 봄은 사방에 가득하고, 무르익을 때로 무르익어 초봄의 설레임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우리 각자의 삶은 늘 봄을 바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작은 가곡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