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현 박사님의 글입니다.

꿈많던 대학1학년, 그러나 반정부 데모로 전국의 대학들이 연일 휴교를 하던 와중에 나는 첼로를 배우게 되었고 덕분에 의대 관현악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당시 대구 시내에는 첼로를 연주하던 남자가 드물었던 터라 자연 우쭐한 감도 없지 않았다. 대학의 관현악 정기 연주회는 매년 11월에 있었는데 8월 방학때부터 시작되는 지루한 연습이 하루 4-5시간씩 방과후에 계속되었다. 예산이 넉넉지 못했던 관계로 우리는 연습 사이사이의 간식을 라면으로 때워야 했다. 다섯 개가 한꺼번에 포장된 라면 십여 개를 큰 솥에 한꺼번에 넣고 끓여 낼 수밖에 없어서 고들고들해야 할 면발이 항상 우동같이 퍼져 있었다. 하지만 항상 먹성이 좋았던 젊은 학생들에게는 면발모양이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1969년 가을, 우리는 정기연주회를 위해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연습 사이사이에 먹던 그 라면의 맛은 어느새 1악장 첼로의 도입부를 연상시킬 만큼 학습화 되어 있었다.

  30여년전, 대구극장이 있던 좁은 골목 맞은편에는 허름한 건물 2층에 ‘하이마트’란 고전음악감상실이 있었다. 지그시 감은 눈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쇼파에 몸을 묻은 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해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멋있는 것 같아서 나도 자주 이 감상실을 들러서 흉내를 내곤 했다. 감상실 전면에는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대 작곡가들과 토스카니니로 생각되는 지휘자의 얼굴을 조각한 거대한 조각상이 펼쳐져 있었고 객석의자는 눌러 앉기만 하면 저절로 잠이 올 것 같은 푹신한 의자였다.
  그날도 나는 자리에 깊숙이 앉아 신청해 놓은 곡을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잠결에 나는 어디선가 라면 끓이는 느끼한 냄새에 잠을 깼다. 이 감상실에서 누가 예의도 없이 라면을 끓여 먹나, 의아해 하면서 부시시한 눈으로 뒤를 돌아 보았으나 감상실 안에는 눈을 지그시 감은 예의바른 청중들만 자리하고 있을 뿐 라면을 끓이는 분답스런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돌아 앉으려는 순간 귀에 익은 미완성 교향곡의 2악장이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아뿔사, 내가 음악을 신청해 놓고 잠이 들었구나 생각이 드는 순간 잠결에 느꼈던 라면 냄새가 현악기의 부드러운 멜로디와 기막히게 어우러져 나의 오감을 자극해 오고 있었다.
  이후 나는 미완성 교향곡을 라면교향곡이라 부른다.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만 아마 슈베르트가 들었더라도 동감했으리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