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박석돈교수님의 글입니다.

옛날 학창시절에 나는 틈만 나면 하이마트 음악감상실로 달려 갔다. 지금의 대구극장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건물 2층이었다. 이곳에서 고전음악을 처음 접하고 얼마나 그 감미로움에 빠져 들었는지 모른다. 그 당시에는 음악의 첫 소절만 들으면 곡명과 작곡가를 알아맞추었다. 친구들 끼리 서로 먼저 알아맞추기 시합도 하곤 하였다.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들으면 나의 영혼은 맑아지고 정신은 영롱해졌다. 공부를 할 때에도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공부를 하였다. 그 때에도 어른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야단을 치셨다. 나는 이런 경험이 있기에 요즈음 젊은이들이 귀에 레시버를 꽂은 채 책을 읽어도 이해를 한다.

고전(classic)음악과 대중(pop)음악은 다르다. 대중음악은 처음 듣기에는 쉽고 금방 친숙해지지만 가벼워서 금방 싫증이 난다. 고전음악은 처음 들으면 어려워서 친숙해지기 힘들지만 자꾸 들어서 조금씩 알게되면 그 깊은 맛에 들을수록 더 빠져든다. 고전음악은 동서고금을 통해 가치를 인정받고 남녀노소가 다 즐길 수 있다. 고전이란 옛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공간의 제한이 없이 그 가치가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현대음악 가운데서도 고전이 있을 수 있다.

태교음악이 요즈음 빠르게 유행한다.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요법도 있다. 화가 났을 때에 마음을 평정시켜주는 음악이 있다. 영혼을 맑게해 주고 정신을 집중시켜 주는 음악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은 대부분 이러한 효과가 있다. 과일이 익을 무렵에 과수원에 모차르트나 요한 스트라우스의 음악을 틀어주면 과일이 잘 익고 당도가 높아진다. 목장에서도 소 젖을 짜면서 이런 음악을 틀어놓으면 소 젖이 더 많이 난다.

청소년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청소년들의 감각적이고 찰나적인 문화와도 관계가 깊을 것이다. 대중은 원래 깊이가 없다. 유행에 따르는 것이 보통이다. 매스 컴은 대중에 영합하여 가벼운 것만 추구한다. 사회의 앞날을 내다 보는 안목이 없다. TV나 FM 라디오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시끄러운 대중가요나 팝 음악 뿐이다. 클래식 음악에 할애되는 시간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개별적으로 CD를 구입해서 들어야 한다. 당장에는 청취자가 적어도 공익을 위해서 더 많은 편성을 해야할 것이다. 아름다운 사회, 밝은 사회,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보급할 필요가 있다.